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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와 술 – 고대 향연에서 현대 페스티벌까지

by 어반IT 2025. 4. 17.

술과 축제는 인류 문명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늘 함께였습니다.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신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 혹은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사람들은 술을 들고 축제의 장으로 모였습니다. 고대의 향연에서부터 현대의 뮤직 페스티벌에 이르기까지, 술은 단지 마시는 것이 아닌 축제의 ‘언어’이자 분위기, 그리고 문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축제와 술의 관계를 통해, 그 변화와 본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향연의 술 – 신을 위한 제사에서 인간의 즐거움으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는 대부분 종교 의례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술이 있었습니다. 고대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의 신전에서는 술을 신에게 바치고, 제사 후 남은 술을 사람들이 나눠 마시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는 곧 ‘신과 인간이 함께 술을 나눈다’는 상징적 행위로 자리 잡았죠.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리기 위해 열렸던 이 축제에서는 모두가 포도주를 마시며 춤추고 노래하고 연극을 관람했습니다.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닌, 신과 하나 되어 본능과 감정을 해방시키는 ‘신성한 도구’였습니다. 이 축제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희극 연극, 나아가 현대 공연예술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로마의 바쿠스(Bacchus) 제사 역시 유사합니다. 포도주의 확산과 함께 로마의 귀족들은 ‘연회(컨비비움, convivium)’를 열며 와인과 철학, 음악을 곁들인 사교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술은 이들에게 사교의 매개이자 지성의 발현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고대의 향연에서 술은 감각과 정신, 종교와 철학이 만나는 ‘열림’의 역할을 했던 것이죠.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에서도 술은 제례의 일부였습니다. 아마존 부족들은 발효 음료인 차차(chicha)를 마시며 조상과 대화했고, 중국 고대 왕조에서는 제사 후 ‘잔치를 통해 음덕을 나누는 것’이 의무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런 문화는 모두 술이 단순한 음용물이 아닌 '사회적·영적 교류의 수단’이라는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세와 근대의 축제 – 길드, 시장, 민속과 함께한 술

중세 유럽으로 오면, 축제와 술은 더욱 긴밀히 연결됩니다. 매년 열리는 수확제(Harvest Festival), 맥주 축제, 시장 개장일(Fair Day) 등에서는 맥주와 와인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수도원에서 발달한 맥주 문화는 축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수도원은 종교적 공간이자 지역 축제의 중심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의 축제는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길드(조합)의 권위와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이었습니다. 축제에서 제공되는 술은 조합이 만든 맥주였고, 이를 통해 품질을 증명하고, 소속감을 공유했습니다. 술은 이들에게 경제적 상징이자 사회적 소속감을 나타내는 ‘마시고 나누는 깃발’ 같은 것이었습니다.

동양에서는 절기 축제와 술이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중추절, 단오절에는 오곡주나 약주를 마셨고, 조선 시대의 설날, 추석에는 집집마다 막걸리를 빚어 조상께 올리고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특히 ‘회음연(會飮宴)’이라 하여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술잔을 돌리며 노래하고 풍류를 즐기던 자리는, 술을 통해 인간 사이의 경계를 없애는 행위였습니다.

이 시기의 축제에서는 술의 사회적 기능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즉, 사회 구성원이 서로를 ‘인정’하고 ‘동등하게 바라보는 순간’이 술잔과 함께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술은 공동체 내 평등성과 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술은 낯선 사람을 ‘초대’할 수 있는 기호이기도 했습니다.

현대 페스티벌 – 대중과 세계가 술로 만나는 시간

현대에 들어와 술은 축제의 의미를 훨씬 더 확장시켰습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로, 매년 수백만 명이 미넨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전통 복장을 입고 퍼레이드에 참여합니다. 이 축제는 단지 맥주를 즐기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전통 문화의 계승과 관광 산업의 결합, 그리고 세계 시민의 축제 플랫폼으로 발전했습니다.

미국의 버닝맨(Burning Man),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La Tomatina), 영국의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Festival) 등에서도 술은 빠지지 않습니다. 다만 현대의 축제에서 술은 과거처럼 ‘의식’의 일부가 아닌, 자유와 해방, 자아 표현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무대 앞에서 춤을 추며 맥주를 마시고, 캔 와인을 나누며 인연을 맺는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서울 재즈페스티벌, 그린플러그드, 지산 락페스티벌 등 다양한 야외 공연 축제에서 수제 맥주나 전통주 부스가 늘어나며, 술은 음악과 감성을 매개하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주 페스티벌을 통해 지역성과 스토리텔링을 접목하며 술 자체를 콘텐츠로 소비하는 방식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축제가 더 이상 특정 종교나 문화에 속하지 않고,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중심으로 설계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술은 그 공간에서 말보다 빠르게 연결을 가능케 하며, ‘함께 있음’을 실감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술, 축제를 여는 열쇠이자 사람을 잇는 언어

고대의 신전에서부터 현대의 콘서트장까지, 술은 축제를 열고 마무리하는 도구였습니다. 그 한 잔에는 농부의 땀이, 제사장의 기도가, 연인의 속삭임이, 그리고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축제가 사람을 위한 시간이라면, 술은 그 시간을 더 따뜻하게, 더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매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축제 속 술을 ‘마실 것’으로만 소비하지만, 그 안에는 오랜 역사와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축제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다시 만나는 시간이고, 술은 그 만남을 더 자유롭게, 더 진솔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언어였던 것입니다.

다음 번 축제에 참여할 때, 건배할 순간이 있다면 잠시 그 술잔의 깊이를 떠올려보세요. 그 안에는 수천 년을 이어온 사람들의 기쁨과 염원이,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반짝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