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사케(酒)는 단순한 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쌀로 빚은 정성과 자연의 흐름이 담긴 액체이며, 때로는 신이 머무는 정결한 장소입니다. 특히 신사에서 열리는 제사(祭, 마츠리)에서는 이 사케가 단순한 음료가 아닌 ‘신에게 돌아가는 쌀’, 즉 인간이 받은 축복을 다시 신에게 되돌려드리는 순환의 상징으로 쓰입니다. 오늘은 ‘사케 신사제’를 통해, 술이라는 액체에 담긴 일본인의 신앙과 철학, 그리고 농경 사회의 정서를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신도(神道)의 제례와 사케 – 술은 신과 인간의 다리
일본의 전통 종교인 신도(神道)는 ‘자연을 신으로 섬기는 믿음’입니다. 하늘, 땅, 산, 강, 나무, 바위까지 모든 자연에 ‘카미(神, 신령)’가 깃든다고 믿으며, 인간은 그 카미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인간이 카미에게 바치는 가장 중요한 제물이 바로 사케입니다.
신사에서 열리는 제사, 즉 ‘마츠리(祭)’에서는 정결한 술인 ‘미키(神酒, 미키)’가 반드시 사용됩니다. 이 미키는 일반적인 사케와는 다르게, 제사용으로 별도로 빚어지며, 가장 순수한 물과 쌀, 누룩을 사용해 정결하게 담습니다. 술이기 이전에, 그것은 신의 영역에 바칠 수 있는 ‘깨끗한 쌀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에서 사케를 바치는 순서는 매우 엄격합니다. 먼저 신전에 ‘타마구시(玉串)’라는 상징물을 봉헌하고, 사케를 담은 작은 병(酒壺)을 정중히 신단에 올려놓습니다. 이때 제사장인 ‘칸누시(神主)’는 술병을 두 손으로 받쳐 올리며, 술잔에 따라 한 방울씩 신에게 바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술잔은 작고 넓은 ‘사카즈키(盃)’로, 하늘과의 연결을 상징하는 형태를 가집니다.
술을 바친 후, 제사에 참석한 이들도 함께 사케를 나눠 마십니다. 이 행위는 단지 ‘음복’이 아니라, 신이 받아들인 술을 다시 인간과 나누는 상호적 순환의 의미를 갖습니다. 신에게 올린 술이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는 이 순환 구조는, 쌀 농사를 지어 수확하고, 술을 빚어 신에게 바치고, 그 신의 가호 아래 다시 풍년을 기원하는 순환적 세계관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쌀의 귀환’이라는 철학 – 술은 땅에서 하늘로, 다시 인간으로
사케는 ‘쌀로 빚은 술’입니다. 일본에서 쌀은 단순한 주식이 아니라, 신과 인간을 잇는 생명의 상징이자 국가적 정체성입니다. 특히 쌀을 발효시켜 만든 술은 신성한 쌀의 가장 순수한 형태로 여겨지며, 신사에서의 제례에 가장 먼저 바쳐지는 제물입니다.
신도에서 제사의 본질은 ‘오쿠리모노(贈り物)’입니다. 즉, 신이 인간에게 자연과 생명을 주었기에, 인간은 그 은혜에 감사를 담아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는 구조입니다. 사케는 이러한 은혜의 순환, 즉 쌀 → 술 → 신 → 인간으로 이어지는 경로의 중심에 존재하는 매개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철학이 단순한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일본 전국에는 ‘사카구라(酒蔵)’라고 불리는 양조장이 신사 옆에 위치한 경우가 많고, 일부 사케 브랜드는 직접 신사에 제사주를 바치며 그 해 수확의 성패를 기원합니다. 술이 신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해당 양조장은 판매를 중단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는 단지 상업적인 문제가 아니라, 신의 뜻과 어긋난 일을 하지 않겠다는 순응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신도 축제에 사용되는 술은 일반 상점에서 파는 술과 분리되어 ‘성별된 용기’에 담아 운반하며, 제사 전후에는 절대 손대지 못하게 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이러한 엄격함은 술이 ‘먹는 물건’이기 이전에, 신이 머무는 용기로 여겨졌다는 전통에서 비롯됩니다.
마시는 의식, 나누는 술 – 공동체와 사케의 영적 연결
사케가 제사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사회적 접착제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신사제는 ‘신에게 바치는 것’과 ‘사람이 함께 마시는 것’이 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신이 주는 복을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한다는 연대의 원리를 반영합니다.
제사가 끝나면, ‘나오라이(直会)’라는 이름의 식사가 이어집니다. 이 자리에서 사케는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나뉘며, 이때의 건배는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신과의 약속을 함께 공유하는 행위입니다. 즉, 단순한 ‘음복’이 아닌, 공동체 전체가 그 술을 통해 신과 연결되고, 스스로를 새롭게 한다는 정화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습은 일본 전통 혼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신랑 신부가 서로의 팔을 교차한 채 사케를 나눠 마시는 산산쿠도(三三九度) 의식은, 두 사람이 신 앞에서 인연을 맺는 동시에, 각 가문과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술은 단지 관계의 시작이 아니라, 신과의 계약, 사회적 승인의 상징이기도 한 셈입니다.
흥미롭게도 일본에서는 사케잔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합니다. 특정 제사에서는 흰색 도자기잔만을 사용하거나, 지역마다 다르게 제작한 나무 잔을 사용하며, 그 잔 자체를 신사에 봉납하기도 합니다. 잔 하나, 술 한 방울에도 신의 숨결과 공동체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인식은, 단순히 ‘술’이라는 개념을 훌쩍 뛰어넘는 세계관입니다.
사케, 신이 머무는 술잔
사케는 쌀로 빚어진 술이지만, 일본 전통문화 속에서 그것은 자연의 선물, 공동체의 정성, 신에게 돌아가는 마음이 모두 담긴 존재였습니다. 사케 신사제는 그 술 한 잔을 통해 인간과 자연, 신이 하나 되는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일본인은 특별한 날 사케를 따라 건배하며 조용히 기도합니다. 이는 단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잊지 않겠다는 다짐, 감사한다는 표현,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의지를 담은 행위이기도 하죠.
쌀에서 태어나 다시 신에게 돌아가는 술. 그 순환 속에서 우리는 삶의 리듬과 신성함, 그리고 인간의 겸허함을 다시 떠올릴 수 있습니다. 술이 아니라 마음을 바치는 의식. 그것이 바로 일본 ‘사케 신사제’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