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술을 금지하는 종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무슬림은 알코올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는 말,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슬람의 금주 문화가 항상 지금 같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초기 이슬람 시대에는 포도주가 널리 마셔졌고, 심지어 코란에도 포도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합니다. 술을 금지하면서도 포도를 성스럽게 여기는 이슬람의 복잡한 태도는, 단순한 종교 규율을 넘어 문화와 역사, 인간 심리의 교차점에 서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슬람과 포도, 그리고 술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보려 합니다.
코란 속 술 – 금지까지의 세 단계 진화
이슬람에서 술이 완전히 금지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확립된 개념이었습니다. 즉, 단번에 금주가 명령된 것이 아니라, 코란에서는 술에 대한 언급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엄격한 금지로 이어졌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초기 메카 시기의 꾸란 구절에서는 술에 대한 직접적인 금지보다는, ‘포도와 대추야자에서 좋은 것도 나오고, 취하게 만드는 것도 나온다’는 식으로 술의 이중성을 설명합니다(코란 16:67). 이는 술이 인간에게 기쁨도 주지만, 해도 될 수 있다는 중립적 입장이었습니다.
이후 메디나 시기로 넘어가며 점차 경고의 색이 짙어집니다. ‘기도 중에는 술에 취한 상태로 서지 말라’는 구절(4:43)은, 신과의 소통을 흐리게 만드는 술의 위험성을 강조합니다. 이 구절은 당시 무슬림 공동체에서 실제로 술을 마시는 관습이 여전히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코란 5:90~91에서 술을 ‘악마의 짓이며, 피해야 할 것’이라 명시하면서, 술은 도박, 점술 등과 함께 엄격히 금지됩니다. 이때부터 이슬람 사회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이 종교적으로 금기시되었고, 이후 샤리아(이슬람 율법)에서도 알코올은 하람(Haram, 금지된 것)으로 분류되기에 이릅니다.
즉, 이슬람의 금주 규율은 단번에 떨어진 명령이 아니라, 도덕과 신앙, 공동체의 통합이라는 맥락 속에서 서서히 형성된 윤리 체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포도와 술의 경계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포도는 허용, 와인은 금지 – 이슬람의 상징과 딜레마
이슬람에서 술은 철저히 금지되었지만, 포도는 오히려 천국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언뜻 보면 모순처럼 느껴지지만, 이슬람이 가진 상징의 복잡성과 그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코란에는 ‘천국에는 흐르는 강이 있고, 그곳에서 신자들은 꿀, 물, 우유, 그리고 와인 같은 음료를 즐긴다’는 묘사가 등장합니다(코란 47:15). 이때의 ‘와인’은 현실에서 마시는 것과는 다른 ‘죄가 없는 음료’, 즉 천상의 와인으로 해석되며, 이는 금기를 넘어선 완전한 순수함의 상징입니다.
이슬람 학자들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와인은 금지되지만, 천국에서는 신이 허락한 술(‘라구르’, laghur)이 존재하며, 이는 인간을 해치지 않고 오직 기쁨만을 주는 영적 상징물이라는 것이죠.
또한, 포도 자체는 건강에 좋고 신의 은총으로 여겨졌습니다. 포도즙, 건포도, 식초 등은 모두 허용되며, 오히려 선지자 무함마드가 자주 섭취한 음식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포도가 자연 발효를 거쳐 알코올이 생성된 경우에는 그 알코올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하람(금지)으로 간주됩니다.
이렇듯 포도와 술의 관계는 이슬람에서 매우 미묘하고 철학적입니다. **하나의 재료가 ‘선한 것’과 ‘금지된 것’으로 나뉘는 기준은 단지 성분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에서, 이슬람 율법의 섬세한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 세계의 금주 문화 – 예외, 저항, 적응
이슬람 율법이 술을 금지했지만, 역사 속의 모든 이슬람 사회가 이를 철저히 따랐던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삶은 언제나 종교보다 조금 더 복잡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니까요.
예를 들어 중세 페르시아와 오스만 제국에서는 시인과 철학자, 심지어 일부 황제들까지도 와인을 즐긴 기록이 존재합니다. 유명한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에는 “인생은 짧고, 와인 한 잔이 그 무엇보다 진실하다”는 식의 시구가 많습니다. 이는 와인이 ‘육체적 즐거움’ 이상의 철학적, 존재론적 의미를 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술을 만드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몰래 술을 빚거나, ‘약용’ ‘의학적 알코올’이라는 이름으로 술을 허용하는 방식도 있었습니다. 특히 아라비아 의학자 아비센나(이븐 시나)는 알코올을 소독과 추출에 사용하는 방법을 정리하며, 실용적 측면에서 술의 존재를 부분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또한, 오늘날에도 일부 세속주의 국가(예: 터키, 알바니아, 아제르바이잔)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는 제한적이나마 허용되고 있으며, 무슬림들이 관광지나 개인 공간에서는 와인을 즐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이는 종교계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문화’와 ‘율법’ 사이의 충돌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슬람의 금주는 이상적인 윤리 기준이자, 동시에 실생활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복잡한 실천의 대상입니다. 술을 금지하되, 포도를 품고, 현실 속 다양한 ‘회색지대’를 포용하는 이슬람의 문화적 유연성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입니다.
금주의 종교, 인간의 현실을 이해하다
이슬람은 술을 금지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철학과 조율,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포도는 신의 선물이며, 술은 인간의 무너짐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 그렇기에 그것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서 끊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단순한 규율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균형을 위한 지혜였습니다.
오늘날에도 포도의 달콤함과 와인의 유혹은 많은 이들에게 고민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이슬람은 ‘자제함 속에서 오는 자유’를 강조하며,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신앙과 욕망을 성찰하게 만드는 길을 선택합니다. 포도는 허용되고, 술은 금지되지만, 그 경계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경전 너머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