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잔은 내 피니라.”
기독교에서 와인은 단지 음료가 아닙니다. 그것은 약속이고, 상징이며, 신비 그 자체입니다. 성찬식, 혹은 성체성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예배의식은 2천 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오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신도들의 마음속에 경건한 떨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교회 안에서 마시는 술’, 즉 와인이 성찬식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그 상징이 어떻게 이어져왔는지를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예수의 최후의 만찬 – 와인에 담긴 피의 약속
성찬식의 기원은 바로 ‘최후의 만찬’입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26장, 마가복음 14장, 누가복음 22장 등에는 공통적으로 예수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누며 포도주를 잔에 담아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말한 유명한 구절이 바로 이것이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새 언약의 피다.”
여기서 와인은 단지 식사 중 음료가 아니라, ‘피’를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당시 유대 전통에서 피는 생명과 죄 사함, 제사의 핵심 요소였고, 예수는 이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몸과 피’로 전환시켜 새로운 구속과 언약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는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강력한 상징이었습니다. 피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언약을 나타내는 증표였고, 포도주는 그 피를 대신하는 ‘영적 상징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포도주를 마시며 예수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 피로 자신이 정결해졌다는 믿음을 새겼던 것이죠.
이때의 ‘마신다’는 행위는 단순한 섭취를 넘어,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분이 남긴 사랑의 메시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경건한 행위’였습니다. 이로써 와인은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신비이자 은총의 도구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 수억 명의 신자들이 같은 잔을 통해 그 신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교단별 성찬식의 차이 – 와인을 마시는 방식의 다양성
성찬식이 모든 교회에서 똑같은 모습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교단에 따라 성찬식에서 와인을 사용하는 방식, 상징 해석, 심지어 사용 여부까지도 크게 다릅니다. 이 차이는 각 교단의 신학적 관점과 전통,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먼저 가톨릭교회는 성찬식(성체성사)을 가장 정교하게 구성한 교단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화체설’을 따르며, 포도주와 빵이 축성(prayer of consecration)을 거쳐 ‘실제로 예수의 피와 몸’으로 변화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포도주는 단순한 상징이 아닌, 신비 그 자체로 여겨집니다. 전통적으로는 알코올이 포함된 적포도주를 사용하며, 성찬용 잔인 ‘작위(Ciborium)’와 ‘성작(Chalice)’에 나누어 담습니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와인을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해석합니다. 루터교는 ‘공재설(Consubstantiation)’이라 하여, 빵과 포도주 안에 예수의 실재가 함께 존재한다고 보며, 개신교 전반에서는 주로 비알코올 포도주나 주스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미국과 한국에서는 절제운동과 알코올에 대한 사회적 인식 때문에 실제 와인을 사용하는 교회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정교회는 여전히 포도주를 사용하며, 이를 빵과 함께 숟가락으로 나눠주는 전통을 고수합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찬식이 신성한 신비로 여겨지며, 미사 도중 진행되는 축성 절차는 매우 엄숙하고 경건하게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와인은 교회마다 다르게 사용되지만,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도구’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와인이 가진 역사적·신학적 무게감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와인과 믿음 – 술에 대한 성찰과 현대적 논의
와인이 ‘성스러운 술’로 여겨졌다고 해서, 교회가 언제나 술을 긍정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교회 역사에는 술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와 갈등이 존재합니다. 특히 중세 이후부터는 알코올 중독, 도덕적 해이, 사회적 문제와 연결되며 ‘술의 위험성’이 제기되었고, 일부 교단에서는 와인을 포도즙으로 대체하거나, 성찬식 외에 술을 금하는 운동까지 펼치기도 했습니다.
19세기 미국에서는 ‘금주운동(Temperance Movement)’이 기독교 교회 안에서 강하게 일어났고, 이로 인해 일부 개신교 교단은 포도주 사용을 완전히 배제했습니다. 한국 개신교에서도 이 영향을 받아 성찬식에서 ‘비알코올 포도즙’을 사용하는 전통이 지금까지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와인을 되살리려는 움직임도 존재합니다. 최근에는 전통을 회복하려는 소규모 교회들 사이에서 실제 포도주를 사용하는 성찬식을 되살리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으며, 자연산 포도주 또는 직접 빚은 와인을 사용하는 교회도 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비건 와인’, ‘무첨가 와인’, ‘친환경 와인’ 등이 교회 내에서 채택되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히 ‘술’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포도주의 본질,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선물로서의 와인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움직임이기도 합니다.
결국 술에 대한 논의는 신앙과 윤리, 공동체 규범이라는 복합적인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와인을 마신다는 행위는 시대와 지역, 교단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에는 ‘신과의 연결’, ‘은혜의 나눔’, 그리고 ‘믿음의 재확인’이라는 본질이 존재합니다.
한 잔의 와인, 영혼이 마시는 기도
성찬식에서의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표현이고, 신비의 체험이며, 공동체의 중심입니다. 예수가 나눠준 그 잔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그 안에는 생명, 사랑, 용서라는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다음에 교회에서 포도주 잔을 들게 될 때, 그저 종교적 의무로 마시지 마십시요. 그것은 예수의 피를 마시는 행위이자, 신과 하나 되어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술이라는 물질을 통해 전달되는 그 은혜는, 어쩌면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깊은 위로이자 축복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