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의례용 음료 중 하나입니다. 제사에서 조상에게 올리고, 종교 의식에서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체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많은 종교에서는 술의 사용을 중단하거나 제한하고 있습니다. 금주의 교리, 사회적 가치관 변화, 건강 이슈, 대중 문화의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술은 더 이상 종교의 중심에 있지 않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각 종교와 지역 사회에서는 끊임없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다양한 종교 전통에서 술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현대 사회 속에서 제례와 술의 관계가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불교와 술 – 금주의 계율과 의식 사이의 균형
불교는 오계(五戒) 중 다섯 번째로 ‘불음주계(不飲酒戒)’를 명시하며 술을 금합니다. 이는 수행자의 의식을 흐리게 하고, 도덕적 판단력을 떨어뜨려 다른 계율까지 위반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율장과 초기 경전에서는 수행자가 술에 취해 불경을 훼손하거나 대중을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 엄중히 처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제례에는 술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재의식, 천도재, 49재 같은 의례에서는 유족이 술을 제단에 올리기도 하고, 전통적 차례상에 술이 포함되기도 하죠. 특히 한국의 경우 불교와 유교, 무속이 혼합된 문화에서 유래한 제사 관습은 종종 절에서도 받아들여졌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일부 스님과 불교계 단체는 “절에서는 술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반면 “유족의 정성과 전통을 고려해 상징적으로 허용하자”는 실용적인 견해도 공존합니다. 이는 불교가 현대 사회에서 교리의 엄격함과 현실의 공존이라는 두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상징합니다.
최근에는 ‘차례상에 술 대신 차나 감로수(甘露水)를 올리자’는 운동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절 일부에서는 아예 술 항목을 삭제하거나, ‘술을 상징하는 물’을 사용하는 방법도 도입했습니다. 이처럼 불교계는 금주 계율을 지키되, 유연한 해석을 통해 공동체의 신념과 정서를 동시에 존중하는 방식을 모색 중입니다.
기독교와 술 – 예수의 피에서 사회적 금기로의 변화
기독교는 본래 술에 대해 매우 포용적인 시각을 가졌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고, 최후의 만찬에서는 제자들에게 “이것은 나의 피니 마시라”고 하며 포도주를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천주교의 미사, 동방정교회의 성찬식, 일부 개신교 예배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때 술은 단지 음료가 아닌, 신과의 연합, 구원의 상징으로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특히 미국과 일부 개신교 교단에서는 금주 운동이 확산되며 술에 대한 태도가 급격히 변했습니다.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등 일부 교단은 포도주 대신 포도즙을 성찬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일부 교단은 술을 ‘죄의 도구’로 간주하며 전면 금지하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합니다. 이는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알코올 중독과 범죄, 가정 파괴 문제와 직결되며 사회적 도덕주의와 결합된 결과입니다.
이런 변화는 현대 기독교 내에서도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성경에는 술이 죄라고 적혀 있지 않다”, “절제 있는 음주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온건한 입장과, “교회는 술 문제에 대해 더욱 단호해야 한다”는 보수적 입장이 공존하고 있죠. 한국의 개신교계에서도 일부 교회는 신자에게 술을 금지하며, 심지어 음주 사실이 발각되면 직분(집사, 장로 등)을 박탈하기도 합니다.
결국 기독교에서 술은 구원의 상징에서 사회적 경고물로 변모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찬을 통해 상징적으로 술이 여전히 제례의 일부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전통과 변화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과 술 – 하람과 현실 사이의 경계
이슬람은 술에 대해 가장 엄격한 입장을 가진 종교 중 하나입니다. 코란에서는 술에 대해 점진적으로 경고하며, 마지막에는 명확하게 “술은 사탄의 행위이며, 피하라”고 명시합니다(꾸란 5:90~91). 샤리아(이슬람 율법) 하에서 술은 ‘하람(금지)’으로 분류되며, 술을 마시거나 제조·판매하는 행위는 죄로 간주됩니다.
그렇다면 이슬람 사회에서는 제례나 종교 의식에서 술이 전혀 사용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이슬람 의례에서는 술이 단 1방울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장례, 결혼, 명절 모두 술 대신 향료, 물, 대추야자, 우유 등이 사용됩니다. 특히 무슬림 장례식은 술 없는 순수함과 절제를 중시하며, 이는 코란의 가르침과 공동체의 규율을 철저히 반영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복잡합니다. 일부 세속화된 무슬림 국가에서는 음주가 비공식적으로 존재하며, ‘종교와 생활의 분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예를 들어 터키, 튀니지, 알바니아 등에서는 결혼식에서 술이 등장하거나, 관광업 중심지에서는 무슬림도 음주를 허용받기도 합니다. 이는 전통적 율법과 현대적 생활 방식이 충돌하거나 협상 중임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무슬림 사회에서는 술 없는 의례가 오히려 ‘정결하고 고결한 제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술의 부재는 단순한 금지가 아니라, 자제와 정결, 신과의 거리 조절이라는 이슬람의 영성 철학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종교를 넘어선 논쟁 – 전통, 가족, 윤리의 교차로
술을 제례에 포함할 것인가, 제외할 것인가는 단순한 종교 교리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족 간의 가치관, 세대 간 전통 해석, 사회적 윤리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국만 해도 점점 더 많은 가정이 명절 차례상에서 술을 제외하고 있습니다. 술을 못 마시는 가족,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술을 따르는 것이 어색하다는 이유, 또는 건강과 안전을 이유로 술 없는 제례를 선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죠. 이는 전통보다 현재 가족의 실용성과 감정에 더 중심을 두는 문화로의 변화입니다.
일부 가정에서는 ‘술 대신 차를 올리자’, ‘무알콜 음료를 상징적으로 사용하자’, ‘제례 자체를 생략하자’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제례에 술이 빠지면 조상에 대한 예가 부족하다”는 보수적 시선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처럼 술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세대 간 전통 해석의 갈등지점이자, 문화와 종교 사이의 충돌지점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제례에서의 술은 단지 ‘마실 것’이 아니라, 그 가정과 공동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그리고 신앙과 정체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어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술은 사라져도, 상징은 남는다
종교와 술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떤 종교는 술을 신의 은총이라 하고, 또 어떤 종교는 악마의 도구라 하며, 어떤 문화는 술을 통해 조상과 소통하고, 또 어떤 문화는 술 없는 정결함을 통해 신과의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술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상징, 관계와 가치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더 이상 술 자체에 얽매이지 않지만, 그 술이 상징하던 존경, 유대, 약속, 순환, 그리고 조화의 정신은 여전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술이 사라진 제례는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과 선택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이 서로를 존중하고, 정성을 다하며, 종교와 문화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것이라면, 술 없이도 제례는 충분히 깊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술의 유무를 넘어 어떤 마음으로 예를 올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