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이자, 동시에 가장 복잡한 금기 중 하나였습니다. 누구나 마시는 것 같지만, 사실 술은 언제나 ‘누구는 마셔도 되고, 누구는 마시면 안 되는 것’으로 구분되어 왔습니다. 마시는 행위 자체보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금지당했는가가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죠. 이번 글에서는 술에 얽힌 금기의 문화적 맥락과 의미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해보려 합니다.
종교의 금기 – 술을 통해 드러나는 신과 인간의 거리
종교는 술에 대한 금기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힘이었습니다. 종교는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고, 신성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정합니다. 술은 인간의 의식을 흐리고 도덕적 판단을 약화시키는 물질로 간주되어 왔고,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종교에서 음주에 대한 명확한 제한이 설정되어 왔습니다.
이슬람교는 대표적인 금주 종교입니다. 꾸란에서는 술을 점진적으로 경계하다가, 결국 ‘악마의 짓’이라 명시하며 금지합니다. 무슬림은 술을 마시는 것뿐 아니라, 제조, 유통, 판매도 하람(금지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는 술이 단순히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정결성과 관계된 문제로 보기 때문입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계 중 다섯 번째 계율이 바로 ‘음주 금지’이며, 특히 출가한 스님에게는 절대적 금기입니다. 술은 수행자의 집중력을 흐리게 하고,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자극해 수행의 방해물이 됩니다. 다만 재가신자에게는 상황에 따라 관용이 존재하기도 하며, 지역 문화에 따라 제례나 축제에 제한적으로 술이 허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독교는 좀 더 복잡합니다. 예수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고, 성찬식에는 포도주가 사용됩니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 교단에서는 술을 죄의 씨앗으로 간주하며 금지하고, 포도즙으로 대체합니다. 이처럼 종교의 금기는 단순한 규율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의 적절한 거리, 인간의 책임과 자제의 표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젠더와 술 – 여성은 왜 술을 금지당했는가?
역사적으로 많은 문화에서 여성은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술은 ‘남성의 권리’ 혹은 ‘공적인 음료’로 간주되었고, 여성이 술을 마시는 것은 도덕적 해이, 정조의 상실, 사회적 일탈로 해석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성이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고, 이는 ‘가정을 위태롭게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로마 시대에도 귀족 여성은 술을 마실 수 없었으며, 이를 어길 경우 남편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졌습니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도 ‘여자는 술상에 앉지 않는다’는 암묵적 규칙이 존재했으며, 특히 혼례나 제례처럼 상징적인 자리에서는 여성의 음주는 철저히 통제되었습니다.
이런 금기는 단순히 성 역할의 규범을 넘어서, 여성이 술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거나 권위를 표현하는 것을 억제하려는 권력 구조의 반영이었습니다. 술은 감정 해방과 자기 표현의 수단이기 때문에, 여성의 음주는 곧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표현하는 행위’로 간주되었고, 이는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위협적인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여성의 음주 문화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현대에는 여성도 당연히 술을 즐기며,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 전용 바, 와인 페스티벌, 여성 양조사들의 사회적 위상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과거의 금기가 여전히 일부 문화에서 잔재로 남아 있지만, 이제는 술의 금기 자체보다 그 금기를 만든 권력 구조를 성찰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계급과 직업 – 술이 허락되는 사람과 금지된 사람들
술의 금기는 단지 종교나 성별에만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계급, 직업, 나이에 따라도 음주의 허용 범위는 엄격히 구분되었습니다. 고대부터 술은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도구였고, 이를 마실 수 있는 자격은 곧 사회적 지위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중국 주(周)나라에서는 ‘백성은 술을 자유롭게 마실 수 없다’는 법령이 있었으며, 왕과 귀족은 특별한 의례와 연회에서만 술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술은 엄연히 신분에 따라 차등 분배되었으며, 관리가 주연에 민간인을 초대하거나, 반대로 백성이 제사를 이유로 고급 술을 소비하면 처벌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현대에도 술과 직업의 관계는 여전히 예민한 주제입니다. 예를 들어, 운전기사, 군인, 공무원, 종교인, 교육자 등 특정 직업군은 공적 장소에서의 음주가 부정적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실수나 사건이 ‘직업 윤리’와 직결되기 때문에, 음주의 자유는 직업적 책임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나이에 따른 음주 제한도 있습니다. 많은 국가에서는 법적으로 음주 가능 연령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신체적 성숙뿐 아니라 판단력, 책임감, 사회적 영향력 등을 고려한 금기 규정입니다. 이런 법적 금기는 결국 술을 ‘위험’으로 인식하고, 그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를 사회적으로 선별하는 도구라 볼 수 있습니다.
금기의 문화적 해석 – 금지는 왜 만들어지고, 어떻게 해체되는가?
술의 금기는 단지 통제나 억압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금기는 정체성의 형성과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도구였습니다. 금기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하고,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워왔죠.
예를 들어, 이슬람 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단순히 계율의 준수가 아니라,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유럽 귀족 사회에서 고급 와인을 마시는 것은 ‘자신의 지위’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죠. 즉, 술의 금기와 허용은 모두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문화적 장치인 셈입니다.
하지만 사회가 변화하면서 이러한 금기들은 점차 해체되거나,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음주는 더 이상 부정적으로 인식되지 않으며, 종교 내에서도 일부 유연한 해석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경우 술 없는 의례를 유지하되, 가족의 정성을 고려한 상징적 수용이 늘어나고 있고, 기독교 일부 교단은 포도주 대신 포도즙을 사용하면서도 전통을 존중하려 합니다.
이처럼 금기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재해석되는 ‘가변적 질서’입니다. 중요한 것은 금기의 존재 그 자체보다, 그것이 만들어진 맥락과 작동 방식, 그리고 그것이 개인과 공동체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술, 금기와 해방 사이에서
술은 때로 인간을 해방시키고, 때로는 통제하는 도구였습니다. 누가 마셔도 되는지, 누가 마시면 안 되는지는 단지 음주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그 사회가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었습니다.
금기는 필요합니다.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보호하며, 정체성을 지키는 데 분명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금기가 절대화될 때, 그 안에는 불평등과 억압이 스며들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술이라는 행위보다, 그 술을 마시는 자유와 금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더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술이 허용되었는가 아닌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을 누가 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를 배제했는가입니다. 그 술잔이 가리키는 방향이 평등과 존중이라면, 우리는 비로소 술이라는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