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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과 술 – 무당이 마시는 것은 신의 언어였다

by 어반IT 2025. 4. 12.

술은 때로 즐거움을 위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신과 통하는 문’이었습니다. 샤먼, 즉 무당이라 불리는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술을 단지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신과의 대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해 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샤먼과 술’이라는 주제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술이 어떻게 의식과 신접의 매개체가 되었는지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무당이 마시는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신의 언어이자 인간을 초월으로 이끄는 열쇠였습니다.

한국과 몽골 샤먼의 술 – 신내림과 트랜스의 연결고리

한국의 무속에서는 제의와 굿판에서 술이 빠지지 않습니다. 굿을 시작하기 전, 무당은 대개 술잔을 들어 신에게 바치고, 직접 한 모금 마시는 것으로 의식을 시작합니다. 이때의 술은 단지 ‘예의’나 ‘풍습’이 아니라, 신령을 청해 몸으로 모시는 입구 역할을 합니다.

특히 신내림(신병)이나 강신무(강신샤먼)의 의례에서는 술이 ‘트랜스 상태’를 유도하는 매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굿 중에 무당은 반복적인 북소리, 장단, 춤, 노래와 함께 술을 계속 마시며 정신과 감각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는 ‘신이 들어오는 그릇’이 되어 타인의 말과 동작이 아닌,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가 됩니다. 이때 술은 육체를 열고, 신을 맞이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이죠.

몽골 샤먼문화 역시 유사한 구조를 가집니다. 몽골 샤먼은 술을 의식 전에 신에게 먼저 바치며, 일부는 직접 입에 머금은 후 불에 뿜어 ‘하늘에 제를 올린다’는 의식을 수행합니다. 이를 ‘하늘과의 교신’으로 해석하며, 증류주인 ‘아락(Araq)’이나 발효유주 ‘아이락(Airag)’이 자주 사용됩니다. 술은 여기서도 단순한 음료가 아닌, 제의와 신접 사이의 촉매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몽골과 한국은 ‘하늘(천신)’을 중시하는 샤머니즘 체계를 갖고 있으며, 술은 그 하늘신과 소통하는 데 있어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전통 매개로 여겨졌습니다. 이처럼 술은 육체와 정신, 인간과 신을 동시에 조율하는 신성한 도구로 오랜 시간 살아남았습니다.

한국 샤먼과 술
샤먼과 술

아마존과 아프리카의 의식주 – 술은 신과의 언어였다

남미 아마존 지역의 샤먼들은 술 대신 종종 식물 발효 음료를 사용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차차(Chicha)’입니다. 이는 주로 옥수수, 마니옥 등을 발효시켜 만든 술로, 의식 전에 신에게 뿌리고 나서 마시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 음료는 단순히 알코올 음료라기보다는 ‘조상과 정령이 함께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음료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일부 부족에서는 샤먼이 차차를 마신 후 특정 노래(이카로)를 부르며, 환영 또는 메시지를 받아 전하는 의식을 수행합니다. 이때 술은 ‘정신 세계로의 전이’를 돕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부족원들과 샤먼 사이의 신뢰와 의식을 공고히 합니다. 아마존 지역에서는 이러한 발효 음료가 ‘영적 정보의 매개체’로 기능했던 셈이죠.

아프리카에서도 이와 유사한 맥락의 사례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예컨대 서아프리카 요루바(Yoruba) 문화에서는 전통 주조주인 ‘팜 와인(Palm wine)’이 신과 조상, 그리고 제사의식을 잇는 재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샤먼은 팜 와인을 마신 후 예언하거나, 특정 정령(Orisha)을 부르고, 그들의 뜻을 해석합니다.

아프리카 의식에서는 술이 종종 땅에 먼저 뿌려집니다. 이는 ‘조상 신의 흙과 접속’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런 다음 술을 마신 자가 신을 대신해 예언하거나 병을 치유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술은 영적인 현관문이며, 마신 자는 곧 신의 메신저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즉, 술은 세계 각지의 샤머니즘에서 ‘언어 없는 대화’의 형태로 자리잡아 왔고, 그것을 마시는 행위는 곧 신과 연결되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북유럽과 시베리아 – 술, 환각, 그리고 영혼의 도약

샤머니즘은 북유럽과 시베리아에서도 뚜렷한 전통으로 남아 있으며, 이 지역의 샤먼들도 의식에서 술을 중요한 요소로 다뤄왔습니다. 특히 시베리아 샤먼은 냉한 기후 속에서 강한 알코올을 마신 뒤, 북소리와 함께 트랜스 상태에 돌입하는 의례를 수행합니다.

이들은 종종 ‘스피릿 드링크(spirit drink)’라 불리는 증류주를 사용하며, 술을 마시고 환청·환시를 경험하거나, 꿈속에서 받은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치유와 점을 병행합니다. 여기서 술은 ‘의식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하늘로 가는 정신의 사다리로 작용합니다.

북유럽 켈트 문화권에서는 벌꿀주(Mead)가 사용되었습니다. 켈트족은 벌꿀주를 신의 음료로 여겼고, 의식 중에 이를 마시며 시를 읊거나, 미래를 점치며, 영적 존재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들은 술이 일상 속 언어와 사고를 무너뜨려, 잠재의식의 목소리를 듣게 만든다고 믿었습니다.

현대에서는 ‘술’이 단순한 취함의 도구로 소비되지만, 과거의 샤먼들은 술을 엄격하게 다루었습니다. 특정 시기, 특정 장소, 특정 목적에만 사용할 수 있었고, 아무 때나 마실 수 있는 음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의 문을 여는 ‘키’였고,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두려움도 공존했습니다.

이처럼 시베리아와 북유럽에서 술은 신비와 경외, 그리고 영혼의 확장과 같은 의식적 차원의 행위를 이끄는 촉진제였으며, 샤먼의 역할을 완성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무당의 술은 신의 언어였다

세계 어디서든 샤먼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과 세상 사이를 걷는 사람이며, 신과 인간 사이의 메신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열어주는 매개체 중 하나가 바로 ‘술’이었습니다. 무당이 마시는 술은 단지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준비시키고, 신을 초대하며, 사람들과 신 사이에 말을 전달하기 위한 상징적 언어였던 것이죠.

오늘날에는 이 술이 굿판의 퍼포먼스로 보일 수도 있고, 신비주의적 이미지로 소비되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아주 오래된 인류의 정신과 믿음이 녹아 있습니다. 샤먼의 술잔은 신비를 담는 그릇이자, 말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전하는 통로였습니다. 다음에 누군가의 의식에서 술이 등장한다면, 그것이 단순한 음료가 아닌 신의 언어일지도 모른다는 점, 한 번쯤 떠올려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