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술을 금합니다. ‘오계’ 중 다섯 번째 계율인 **불음주계(不飲酒戒)**—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율은 너무나도 유명하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불교 문화 안에서 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의례와 제례에서 술은 조심스럽게, 때로는 상징적으로 사용되며, 지역 불교 문화에 따라 그 해석은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금주의 종교’ 불교가 어떻게 술을 이해했고, 왜 어떤 경우엔 의례 속에 술을 남겨두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경전 속 금주 계율 – 술은 수행의 장애인가, 자비의 이유인가
불교에서 술을 금하는 이유는 단순히 건강이나 도덕 때문만은 아닙니다. 초기 불교의 계율서인 『율장(Vinaya-pitaka)』에는 술이 인간의 ‘의식적 통제’를 흐리게 하며, 그것이 곧 ‘계율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무의식 중에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등 다른 계율까지 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불교의 금주는 '모든 악행의 근원 차단'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실제로 경전에는 술을 마시고 실수를 저지른 수행자에 대한 처벌 사례가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행자뿐 아니라 재가자(일반 신자)들에게도 금주를 권장하되, 일반 대중에게는 ‘절제’를 강조하며 다소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금주의 이유 중에는 ‘자비심’도 있습니다.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겠다는 자비의 마음이 불교 윤리의 핵심인데, 술을 마신 상태에서는 그 마음조차 무뎌지기 때문에, 수행에 방해된다는 논리입니다. 따라서 술은 수행자에게 있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정신적 독소로 여겨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교 전체가 항상 술을 배제했던 건 아닙니다. 문화적 환경과 시대적 해석에 따라 술에 대한 태도는 의외로 다양했고, 일부 지역과 의식에서는 술이 오히려 ‘상징적 매개’로 남아 있기도 했습니다.
의식 속의 술 – 불교에서 술이 사용된 예외의 순간들
“술을 금하면서도, 왜 술을 의식에 쓰는 걸까?” 이 질문은 불교의 유연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불교가 전파된 여러 지역에서는 현지 문화와 융합되며, 의례와 제례에 술이 사용되는 예외적인 전통이 형성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불교 제사와 재(齋)의식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의 불교문화권에서는 돌아가신 조상이나 영혼을 위한 재의식에서 술이 소량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술은 마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향을 전달하는 매개체’ 또는 ‘정성을 상징하는 제물’로 올려지는 것입니다. 술의 향은 기도와 함께 영혼에게 닿는다고 믿었고, 이는 무속이나 도교에서 차용된 풍습이 불교 의례로 녹아든 형태입니다.
특히 불가(佛家) 제사에서는 ‘법주(法酒)’라는 이름으로 술이 사용되며, 이는 실제 음용이 아닌 제사 형식의 완성을 위한 형식적 절차입니다. 또한 절에서 열리는 ‘천도재’나 ‘49재’에서도 술을 상징적으로 사용하거나, 유가족 측이 술을 올리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승려들이 마시지 않고 단지 예를 갖추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됩니다. 붉은 색 발효 음료나, 약간의 보리를 넣어 발효시킨 ‘창(Chang)’이라는 음료를 제사와 의식 중에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단순한 음주가 아니라 영혼을 정화하고 위로하기 위한 제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처럼 술은 불교 내에서 기본적으로 금지된 것이지만, 문화적·상징적 의미가 강한 의식에서는 예외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사용되며, 이는 불교가 단순히 교리 중심이 아닌 ‘삶의 문화’로서 적응해 온 종교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문화에 따라 달라진 술의 자리 – 동아시아 불교의 융합적 전통
동아시아 불교는 특히 지역 고유의 신앙과 강하게 결합되며 다양한 술 문화와 접점을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신불융합(神佛習合) 문화에서는 사찰과 신사가 구분되지 않고 운영되던 시기도 있었는데, 이때 일부 사찰에서도 ‘신에게 바치는 술(御神酒, 오미키)’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후에 불교가 더욱 정비되며 사라지긴 했지만, 의식의 향과 소리, 정성 속에 술이 남은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중국 불교에서는 도교와의 융합이 강했기 때문에, 의례 중에 향, 술, 차 등을 동시에 사용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도교에서는 신에게 향과 함께 술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고, 불교에서는 이를 ‘재물을 다 갖춘 공양’의 의미로 수용했습니다. 결국 술은 제사의 균형과 완성을 위한 구성요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한국 불교에서도 무속적 요소가 불교 의례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가천도재’에서는 영혼이 이승에서 미련을 떠나도록 돕는 의식을 진행하는데, 이때 음식과 술이 함께 올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불교적 교리와 무속적 조상의례가 문화적으로 공존하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역 불교는 경전을 엄격히 따르면서도 ‘문화적 융합’의 여지를 남긴 것이 특징입니다.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지닌 상징성과 향, 정성만을 의식에 도입함으로써, 불교는 금주의 원칙과 삶의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온 셈입니다.
금주 속에서도 기억된 술, 불교의 너그러움
불교는 술을 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술의 향과 상징, 그리고 정성은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교는 시대와 문화를 품으면서, 술을 ‘마시지 않되 의미는 남기는 방식’으로 수용해 왔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불교의 지혜이자, 삶과 신앙의 균형을 추구하는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술은 취함의 도구로 소비되지만, 불교 문화에서의 술은 오히려 ‘절제된 정성’의 상징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잔을 올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향을 피우는 그 순간. 불교는 술을 입이 아닌 마음으로 마셨던 종교였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