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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큐레이터가 말하는 AI 작품 전시법

by 어반IT 2025. 3. 30.

요즘 전시를 기획하다 보면, "AI 작품은 어떻게 전시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이 질문에 선뜻 답을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전통적인 회화나 설치미술과는 접근 방식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 차례 AI 기반의 작품들을 다루면서 점점 느끼는 건, 이 작품들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현장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경험했던 AI 작품 전시의 실제 이야기와, 그 속에서 발견한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을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AI 작품 전시
갤러리 큐레이터가 말하는 AI 작품 전시법

AI 작품은 결과보다 ‘경험’을 전시해야 합니다

AI로 만든 예술 작품은 한 장의 그림, 하나의 영상처럼 완성된 결과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생성되었는지, 창작의 ‘과정’과 ‘방식’이 핵심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Midjourney나 DALL·E로 만든 이미지 한 점을 벽에 걸어 두면, 관람객은 "이걸 누가 만든 거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저는 이런 작품을 전시할 때, 프롬프트(텍스트 입력값)를 함께 소개하거나, 짧은 영상으로 생성 과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관람객들이 ‘이 AI는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구나’를 체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작품에 몰입하게 됩니다. 또 어떤 전시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프롬프트를 입력해서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생성해보는 체험 코너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참여형 요소가 들어가면 전시에 대한 이해도와 만족도가 확실히 높아지더군요.

이처럼 AI 작품을 다룰 때는 ‘결과’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맥락’과 ‘구조’를 함께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건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관람객이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일종의 공동 창작 과정으로 보셔도 좋습니다.

기술은 기술일 뿐, 결국 ‘사람의 감정’을 이끌어야 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AI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람객들이 ‘신기하다’고 느끼는 시간은 매우 짧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놀랍지만, 그 놀라움만으로 전시를 구성하면 금방 지루해집니다. 결국 작품이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지 못하면, 기억에도 남지 않고 깊이 있는 반응을 끌어내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AI 작품을 전시할 때에도 결국엔 ‘이 작품이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줄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합니다. 예를 들어, 표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감정 시각화 프로젝트를 기획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는 단순히 데이터 시각화라는 설명만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은 우리가 평소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또한 디지털 전시라고 해서 무조건 화면이나 디스플레이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습니다. 조명, 사운드, 공간 배치 등을 통해 아날로그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로 AI 작품 옆에 작가의 손글씨 메모를 함께 전시했더니 관람객들이 훨씬 더 따뜻한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더군요.

AI는 도구이고, 기계입니다. 중요한 건 그걸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와 ‘감정’입니다. 큐레이터로서 저는 기술 자체보다는, 그 기술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을지에 더 관심을 둡니다.

AI 전시는 관객을 ‘구경꾼’이 아닌 ‘참여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AI 작품은 특성상 관객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카메라 앞에 서거나, 어떤 동작을 하게 되면 작품이 반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럴 때 관객은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서, ‘참여’하고 ‘반응’하면서 더 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저는 이런 참여형 전시를 기획할 때, 아주 작은 인터랙션이라도 가능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AI가 관람객의 목소리를 듣고 그에 맞는 시를 생성하거나,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이 변화하는 형태의 전시는 항상 반응이 좋았습니다.

또한, 관람 후에도 체험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관람객이 생성한 이미지를 QR코드로 저장하거나,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도록 했더니, 전시 이후에도 관람객들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유하더군요. 이것은 작품의 생명을 길게 이어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AI 작품은 기술적인 오류가 날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시 운영팀이 기술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관람객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안내 문구나 대기 시스템도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AI 작품 전시는 '설명'이 아니라 '함께하는 이야기'입니다

AI 예술은 아직 우리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분야입니다. 그래서 전시를 기획할 때, 너무 기술 중심으로 설명하거나, 반대로 단순히 시각적 결과물만 보여주는 방식은 둘 다 한계가 있습니다. 큐레이터로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람객이 이 전시 안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느끼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전시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AI라는 기술은 새로운 예술의 언어일 뿐, 예술의 본질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연결을 잘 설계하는 것이, AI 전시에서 큐레이터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AI 기반의 예술은 점점 많아질 것입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기술이 놀랍다’는 단계를 넘어서, ‘이걸 통해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전시라는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도록 기획하는 것, 그것이 바로 AI 시대의 큐레이션이라고 믿습니다.